18강 쌍방향 비유, 다층적 의미

카피라이터 출신 작사가가 알려주는 깊이 있는 비유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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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16, 2025
18강 쌍방향 비유, 다층적 의미

■ 집으로 떠나는 여행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땐

잠시 이방인이 되는 거야

모자에 선글라스 쓰고

자 떠나자 집구석 세계여행

 

냉장고는 남극의 빙하

화장실 욕조는 지중해

강아지 펜스는 만리장성

지하실은 카파도키아

 

어릴 땐 모든 게 신기했는데

어른이 되니 따분해진 세상

가끔 집으로 여행을 떠나자

여행 끝나는 날 추억할 수 있게

 

■ 가사 소개

 

튀르키예 여행을 갔다가 쓴 노래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집에 가고 싶다고 투덜거리다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 가사 분석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땐

잠시 이방인이 되는 거야

모자에 선글라스 쓰고

자 떠나자 집구석 세계여행

 

▶ 벌스: 외국인이 보면 우리나라도 외국이다. 역발상으로 내가 외국인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일상의 모든 것이 외국처럼 낯설고 신기하게 느껴진다.

 

냉장고는 남극의 빙하

화장실 욕조는 지중해

강아지 펜스는 만리장성

지하실은 카파도키아

 

▶ 프리코러스: 원관념은 우리 집에 있는 사물들이고 보조관념은 해외의 명소들이다. 비유는 한 마디로 서로 다른 것들 사이에서 닮은 꼴을 찾는 것이다.

 

어릴 땐 모든 게 신기했는데

어른이 되니 따분해진 세상

가끔 집으로 여행을 떠나자

여행 끝나는 날 추억할 수 있게

 

▶ 코러스: 여행은 인생에 대한 비유다. 즉, 이 노래는 큰 틀에서 인생을 여행에 비유한 후(중첩 구조), 그 안에서 다시 한 번 집 안의 사물들을 세계 명소에 비유했다.

 

■ 쌍방향 비유

 

비유할 때는 원관념에 맞는 보조관념을 찾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는 특별한 보조관념을 찾거나 주제를 확장하기가 어렵다. 보조관념(소재)을 먼저 찾고 그와 비슷한 원관념(주제)을 찾는 것이 훨씬 생산적이다. 이렇게 거꾸로 된 비유법을 ‘역방향 비유’라고 한다.

 

예를 들어 「집으로 떠나는 여행」에서는 우연히 집에서 본 냉장고를 보고 남극의 빙하를 떠올렸다(뷰자데: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기). 주위를 둘러보니 화장실 욕조(지중해), 강아지 펜스(만리장성) 등 집 안에 세계 문화 유적을 닮은 것들이 많았다. 이번에는 반대로 세계 문화 유적을 먼저 떠올리고 그와 비슷한 것을 집에서 찾았다. 스핑크스는 파마한 엄마를, 후지산은 흰머리가 가득한 아빠를 닮았다.

 

이렇게 보조관념에서 원관념을 찾고(역방향 비유), 주제 아이디어가 떠오른 후에는 반대로 원관념에서 보조관념을 찾는다(정방향 비유). 이렇게 역방향과 정방향을 오가며 연결하면 원관념과 보조관념을 완전히 밀착되게 연결할 수 있다(쌍방향 비유). 이러한 쌍방향 비유법은 앞서 「무선충전」에서도 사용된 바 있다.

 

다시 「무선충전」에 적용해 보자. 먼저 역방향 비유를 한 후(예: 방전된 휴대폰 → 지친 몸), 이번에는 반대로 원관념 쪽에서 보조관념의 유사점을 찾는 정방향 비유를 한다(예: 다크서클 → 어두워진 화면). 이렇게 보조관념과 원관념을 쌍방향으로 오가며 공통점을 찾아나간다(예: 어두워진 화면 → 절전모드 → 작동이 느려짐 → 생각이 느려짐 등).

 

■ 다층적 의미 구조

 

1단계: 1.5층 구조

 

1.5층 구조는 중의성을 활용하여 가사에 추가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안녕’은 만날 때 하는 인사말이기도 하고, 헤어질 때 하는 인사말이기도 하다. 이를 가사에 활용하면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다시 만나기 위한 약속일 거야 _015B, 「이젠 안녕」’처럼 표현할 수 있다. 1.5층 구조는 랩의 라임에 언어유희와 함께 자주 등장한다.

 

□ 넌 요즘 권투계랑 똑같아 알 리 없지 _스윙스, 「불도저」

 

□ 해외로 가자 오키? 나와 _기리보이, 「You look so goog me」

 

□ 답답해 니 가사는 마약중독자처럼 약해 _에픽하이, 「eight by eight」

 

□ 난 화난 백인처럼 조지고 부시네 _버벌진트, 「달리자」

 

2단계: 2층 구조

 

2층 구조는 표면적 의미와 이면적 의미로 구성된 ‘중첩 구조’다. 표면적 의미로 해석하면 A스토리가 되고, 이면적 의미로 해석하면 B스토리가 된다. 앞서 「덧니」와 「3월의 눈사람」에서 사용된 바 있다.

 

다시 돌아올 거라고 했잖아 / 잠깐이면 될 거라고 했잖아

여기 서 있으라 말했었잖아 /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물끄러미 선 채 해가 저물고 / 웅크리고 앉아 밤이 깊어도

결국 너는 나타나지 않잖아 / 거짓말 음 거짓말

 

▶ 이적의 「거짓말」이다. 표면적으로는 자신을 버리고 떠난 여인을 기다리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그러나 이면적으로는 자신을 버리고 떠난 주인을 기다리는 유기견의 이야기다.

 

넌 정말로 Eris를 찾아낸 걸까 말해 내가 저 달보다 못한 게 뭐야 us는 u의 복수형일 뿐 어쩌면 거기 처음부터 난 없었던 거야 언젠가 너도 이 말을 이해하겠지 나의 계절은 언제나 너였어 내 차가운 심장은 영하 248도 니가 날 지운 그 날 멈췄어

 

▶ 방탄소년단의 「134340」이다. '134340 플루토'는 명왕성의 공식 명칭이다. 명왕성은 태양계의 행성이었지만 2005년 왜소행성 에리스가 발견되면서 행성의 자격을 박탈당했다.(표면적 의미). 마찬가지로 새로운 남자가 나타나면서 화자는 남자친구의 자격을 박탈당했다(이면적 의미).

 

3단계: 다층 구조

 

「집으로 떠나는 여행」은 마치 3개의 층위로 구성되어 있다. 이 노래를 처음 듣는 리스너는 ‘역발상’에 흥미를 느낄 것이다(1층). 생각해 보니 집에도 세계 문화유산을 닮은 것들이 많이 있잖아? 하고 말이다.

 

하지만 좀 더 성숙한 리스너라면 ‘소중한 것은 가까이 있다’라는 깨달음의 층위에 도달할 것이다(2층). 생각해 보면 해외까지 나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 안의 명소도 가본 곳이 별로 없다. 그럴 때는 내가 잠시 외국인이 되었다고 상상하면 어떨까?

 

인생을 좀 더 살아본 리스너라면 마지막 층위(3층)에 도달한다. 힌트는 마지막 문장에 있다. 이 노래에서의 ‘여행’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다. ‘인생이 마지막 날 추억할 수 있게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자’가 3층의 메시지이다.

■ 「집으로 떠나는 여행」 노래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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