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강 인지구조, 프리셋 설정하기

카피라이터 출신 작사가가 알려주는 작사법으로 카피라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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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15, 2025
1강 인지구조, 프리셋 설정하기

■ 집사야

 

집사야 잘 지내고 있니

이곳은 박스도 많고 츄르도 많아

난 정말 행복해 고양이 별에서

딱 하나 네가 없는 것만 빼고

 

기억해 날 안아준 너의 따뜻한 손길

아무리 할퀴어도 날 놓지 않았지

 

집사야, 날 안아줘서 고마웠다

네 덕분에 이번 생은 정말 행복했어

집사야, 널 선택해서 참 다행이야

무지개 다리를 건너 이 별에서도

영원히 널 잊지 않을게​

 

■ 가사 소개

 

무지개 다리를 건넌 고양이가 집사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노래다. 집사의 관점이 아닌 고양이의 관점에서 노래한다.

■ 가사 분석

 

집사야 잘 지내고 있니

이곳은 박스도 많고 츄르도 많아

난 정말 행복해 고양이 별에서

딱 하나 네가 없는 것만 빼고

 

▶ 벌스: 무지개 다리를 건넌 고양이가 고양이 별에서 행복하게 지내는 상황이 그려진다. 추상적인 행복을 ‘박스’와 ‘츄르’라는 구체적인 사물로 표현다. 시공간적 배경이 드러난다.

 

기억해 날 안아준 너의 따뜻한 손길

아무리 할퀴어도 날 놓지 않았지

 

▶ 프리코러스: 집사와의 첫 만남을 떠올린다(기억). 벌스에서 코러스로 넘어가는 프리코러스에서 과거의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는 것은 대중가요에서 흔히 사용되는 연출이다.

 

집사야, 날 안아줘서 고마웠다

네 덕분에 이번 생은 정말 행복했어

집사야, 널 선택해서 참 다행이야

무지개 다리를 건너 이 별에서도

영원히 널 잊지 않을게​

 

▶ 코러스: 영원히 집사를 잊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메시지는 고백, 요청, 약속 등으로 나타난다. 고양이라는 화자의 특성에 맞게 초등학교 저학년이 사용하는 쉬운 단어로 구성했다.

■ 인지 구조

 

인지 구조란 선행사건(사랑, 이별, 죽음 등)에 대한 반작용으로 상황 → 정서 → 메시지로 이어지는 전개 방식이다. 선행사건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상황’에는 크게 4가지 종류가 있다. 말, 행동, 현상, 오감이다.

 

1. 말

 

‘이별’이라는 선행사건에 대해 윤종신의 「좋니」는 이런 말로 반응한다. ‘이제 괜찮니 너무 힘들었잖아 우리 그 마무리가’ 조성모의 「To Heaven」은 상대에게 안부를 물으며 반응한다. ‘괜찮은 거니 어떻게 지내는 거야 나 없다고 또 울고 그러진 않니’ 대개 독백으로 표현된다.

 

2. 행동

 

사랑에 빠진 여자는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 수많은 선택지가 있겠지만 ‘자기 옷이 아닌 남자친구의 옷을 쇼핑한다’도 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이별한 남자는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 수많은 선택지가 있겠지만 그녀와 함꼐 걷던 ‘신천역 4번 출구를 헤맨다’도 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포맨, 「안녕 나야」)

 

3. 현상

 

모든 범죄가 단서를 남기듯이 선행사건도 흔적을 남긴다. 그것이 현상이다. 예를 들어 남자친구와 살다가 이별했다면 파란색 손잡이의 칫솔이 남을 것이고, 여자친구와 살다가 이별했다면 화장실 비누에 긴 머리카락이 붙어있을 것이다. 우리는 탐정처럼 돋보기를 듣고 선행사건이 남긴 단서를 찾아야 한다.

 

4. 오감

 

강렬한 선행사건은 오감을 주관적으로 왜곡시킨다. ‘그가 웃었다. 세상이 밝아졌다’ 영화 「내 마음의 풍금」의 카피다. 단지 남자가 웃었을 뿐인데, 사랑에 빠진 여자의 눈에는 온 세상이 밝아진 것처럼 보인다. ‘주관적 감각 왜곡’이라는 쓰킬에 대해서는 뒤에 별도로 자세히 다룬다.

 

5. 요약

 

인지 구조는 선행사건에 대한 반응(말, 행동, 현상, 오감)이 곧 작사의 소재가 된다. 앞부분에 외부 상황이 나오고 뒷부분에 내적 변화가 드러난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선경후정(先景後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인지 구조는 쓰인 가사는 서정성이 강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시(詩)라고 봐도 무방하다.

■ 주객전도

 

오펜의 「집사야」, 이적의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과 로이킴의 「Home」은 모두 반려동물의 입장에서 주인을 그리워하는 노래다. 인간은 대개 인간의 입장에서 사물을 바라보고 생각한다. 철학자 베이컨은 이러한 편향을 ‘종족의 우상’이라고 했다. 주객전도는 종족의 우상을 극복하는 유용한 생각의 도구다.

■ 프리셋 설정하기

 

가사는 진공에서 탄생하지 않는다. 글을 쓰게 만드는 방아쇠와 같은 계기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이별일 수도 있고, 사랑에 빠진 순간일 수도 있고, 가까운 누군가의 죽임일 수도 있다. 이러한 선행사건을 둘러싼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정하는 것을 ‘프리셋(Preset)’이라고 한다. 프리셋은 육하원칙에 따라 설정한다.

 

1. 무엇이/왜 일어났는가?

 

선행사건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명사로 된 짧은 선행사건 앞에 수식어를 붙이면 선행사건의 범위가 구체적으로 좁혀진다. 그냥 ‘고양이의 죽음’가 아니라 ‘주워온 고양이의 죽음’처럼. 그냥 ‘주워온 고양이의 죽음’이 아니라 ‘주워온 고양이의 수명이 다한 편안한 죽음’처럼.

 

2. 누가/누구에게 말하는가?

 

다음으로 화자와 청자를 정해보자. ‘집사와의 이별(죽음)’이라는 사건은 집사가 죽은 고양이에게 말할 수도 있고, 반대로 죽은 고양이가 집사에게 말할 수도 있다. 「집사야」에서는 고양이가 집사에게 말하는 상황으로 설정했다. 즉, 화자가 고양이고 청자가 집사다.

 

3. 언제/어디서 말하는가?

 

가사는 영상보다 사진에 가깝다. 즉, 장기간에 걸쳐 여러 장소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지 않는다. 한 장소에서 한 순간에 떠오른 ‘희석되기 이전의’ 절절한 감정을 표현한다. 따라서 시공간도 구체적으로 설정해야 한다. 「집사야」에서 시간적 배경은 ‘밤’이고, 공간적 배경은 ‘고양이 별’이다.

 

4. 어떻게 말하는가?

 

「집사야」에서 고양이는 어떻게 말할까? 아무리 의인화시킨다고 해도 고양이는 고양이다. 어른처럼 성숙한 어투를 구사하는 것은 몰입을 방해한다. 어휘력이 부족한 초등학생같은 말투가 어울린다. 고양이가 집사를 선택할 때 보통 ‘간택’이라는 단어를 쓰지만 고양이가 쓰는 어휘로는 무리다. 고민 끝에 ‘선택’으로 바꿨다.

■ 프리셋의 중요성

 

노래는 3분짜리 영화다. 영화의 성공 여부는 촬영 이전에 기획 단계에서 결정된다. 어떤 소재를 다룰 것인지, 주인공 역할에 누구를 캐스팅할 것인지, 무대 세트는 어떻게 할 것인지 ‘기획’하는 것이 프리셋이다. 프리셋은 영화의 로그라인이다. 제작 이전에 기획 단계에서 끌리는 요소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팔린다.

■ 「집사야」 노래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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