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절기
계절이 오가는 문틈에 서서
간절히 기다린다 너라는 바람
이불을 바꾸고 옷장을 정리할 때면
어김없이 불어온다 문틈 사이로
봄이라 부르기엔 넌 너무 붉었고
여름이라 부르기엔 넌 너무 하얗다
널 보내고 난 어긋난 계절을 살아
철 지난 달력을 넘기지 못해
널 보내고 난 회색의 날들을 살아
마음껏 울지도 웃지도 못해
■ 가사 소개
「벚꽃 엔딩」이나 「All I want for Christmas」 같은 계절 연금송을 기획하다가 1년에 연금을 4번 타겠다고 만든 노래다.
■ 가사 분석
계절이 오고 가는 문틈에 서서
간절히 기다린다 너라는 바람
이불을 바꾸고 옷장을 정리할 때면
어김없이 불어온다 문틈 사이로
▶ 벌스: 간절기를 이불을 바꾸고 옷장을 정리하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간절기가 되면 생각나는 ‘너’는 계절이 바뀌면 문틈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으로 표현했다. 제목인 ‘간절기’는 ‘간절한 기다림’의 줄임말이다.
봄이라 부르기엔 넌 너무 붉었고
여름이라 부르기엔 넌 너무 하얗다
▶ 프리코러스: ‘너’에 대한 기억을 역설적인 색채 이미지의 대비로 표현했다. 봄이라고 부르기엔 넌 불처럼 뜨거웠고(붉었다), 여름이라고 부르기엔 아직 눈처럼 순수했다(하얗다).
널 보내고 난 어긋난 계절을 살아
철 지난 달력을 넘기지 못해
널 보내고 난 회색의 날들을 살아
마음껏 울지도 웃지도 못해
▶ 코러스: ‘어긋난 계절’은 간절기이면서 결코 떠날 수 없는 ‘너’라는 존재를 의미한다. ‘잊을 수 없다’를 ‘철 지난 달력을 넘기지 못한다’라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표현했다. 물론 이는 ‘너’와 함께 한 추억의 달력이다.
■ 다중 비유
다중 비유는 하나의 보조관념에 둘 이상의 원관념을 결합하는 쓰킬이다. 상징과 다르게 원관념이 표면에 드러나 있지만, 어떤 맥락에서는 A의 비유로, 다른 맥락에서는 B의 비유로 사용된다. 여기서 독자는 가사를 일관된 기준으로 해석하기 어려운 의도된 혼돈을 겪게 된다. 서로 다른 원관념이 하나의 비유로 직조되면서 점묘법처럼 이미지가 섞이게 된다(이미지 병치혼합).
「간절기」를 읽고 독자들은 간절기가 이별 후의 상황을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하고, 헤어진 상대방을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한 애매모호한 느낌을 받는다. 흑과 백으로 딱 구분되지 않은 이러한 어중간한 느낌이야말로 내가 의도한 간절기의 느낌이다. ‘간절기’는 이별한 후의 어수선한 심리 상태, 또한 어떠한 계절로도 정의할 수 없는 신비로운 ‘너’에 대한 다중 비유이다.
다중 비유는 반대로 하나의 원관념에 여러 개의 보조관념을 연결하는 방식으로도 사용될 수 있다. 「간절기」에서 ‘너’는 바람이기도 하고, 계절이기도 하고, 색채이기도 하고, 헤어진 연인이기도 하다. 이처럼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쌍방향으로 얽히고 설키면서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아라베스크 문양처럼 복잡하고 다층적인 의미를 직조한다. 이는 이미지 병치혼합 효과를 만든다.
이전에 소개한 「혓바늘」에서 ‘혓바늘’은 이별의 후유증이자, 내 안에 돋아난 ‘너’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렇게 하나의 보조관념을 선행사건의 결과이자 상대방에 대한 비유로 사용하면 다양한 이미지가 혼합된 신비로운 시적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이는 서투른 작가가 생각을 정리하지 못해서 오는 애매모호함이 아닌, 명확한 노림수가 있는 전략적인 애매모호함이다.
■ 동사로 번역하기
형용사, 부사는 가급적 동사로 ‘번역’해야 한다. 동사로 번역한다는 것은 형용사, 부사를 그 자체가 아니라 ‘원인’이나 ‘결과’로 표현한다는 뜻이다. ‘맛있는 라면(형용사)’은 ‘남이 끓여준 라면’이라고 표현하면 느낌이 더 살아난다(원인). 또는 ‘하루 세 끼 먹을 수 있는 라면’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결과). 시적인 표현은 ‘지금, 여기’가 아닌 ‘원인, 결과’ 쪽에 있다.
□ 이불을 바꾸고 옷장을 정리할 때면
간절기를 간절기라고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간절기가 오면 하는 행동으로 표현했다.
□ 대문 간 마다 진흙 묻는 나막신 봄을 알리네 _고바야시 잇사
겨울이 가고 봄이 왔음을 표현한 하이쿠다. 겨울이 지나면 얼어붙은 흙길이 녹아서 진흙이 되어 나막신에 묻는다.
□ 입술을 깨물죠 또 발끝만 보죠 _성시경, 「차마」
이별의 슬픔을 무의식적인 행동으로 표현했다. 성시경 노래의 가사에는 이렇게 동사로 번역하기 패턴이 많이 발견된다.
□ 불 꺼진 밤 작은 뒤척임 없이 잠들 수 있길 _강다니엘, 「Ride 4 U」
두려움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지면 불 꺼진 밤에도 뒤척이지 않고 편하게 잠들 수 있다.
□ 소리 내 우는 법을 잊은 널 위해 _아이유, 「Love poem」
너무 일찍 철이 들어서 어릴 때부터 감정을 절제하며 살아 온 아이는 슬퍼도 소리를 내서 울지 못한다.
□ 너는 우는 법을 알기도 전에 참는 법부터 배운 가여운 아이 _심규선(Lucia), 「소년에게」
철이 일찍 든 아이를 동사로 표현해 보자. 무릎이 까져도 울지 않는 아이, 과자를 받으면 바로 먹지 않고 숨겨두는 아이 등.
□ 옛날에 손금이 나쁘다고 판단받은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은 자기의 손톱으로 손바닥에 좋은 손금을 파가며 열심히 일했다. 드디어 소년은 성공해서 잘 살았다. _김승옥, 「무진기행」
성공을 향한 의지가 강한 소년을 행동으로 표현했다. 동사로 번역하기는 소설에서 살아움직이는 듯한 캐릭터를 만드는 데 사용된다.
□ 숨 참고 뛰어든 세상은 말해 고생은 지금부터 _정일훈 of 비투비, 「바빠 보여요」
각오를 단단히 하고 세상에 도전하는 것을 깊은 물 속에 뛰어들기 전에 코를 틀어막고 숨을 참는 행동으로 표현했다.
□ 걷다 보니 신천역 4번 출구 앞이야 _포맨, 「안녕 나야」
그리움을 습관적인 행동으로 표현했다. 그녀를 향한 그리움이 원인이 되고, 신천역 4번 출구 앞을 걷는 행동이 결과가 된다. 동사로 번역하기는 결과 보기의 대표적인 패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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